보은군민의 자긍심...석천암(石泉庵) 복원

군비 3억 7000만원 투입, 20일 보은읍 성족리서 준공식
2019. 09.20(금) 17:51

조선 초기에 지어졌다 지난 2006년 해체됐던 석천암(石泉庵)이 복원돼 20일 보은읍 성족리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준공식에는 정상혁 군수를 비롯한 경주김씨 충암공파종중 김응일 회장, 경주김씨 충청북도 종친회 김치구 회장, 대전시립박물관 류용환 관장과 지역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새롭게 복원된 석천암은 지난 2006년 8월 토지주에 의해 해체된 것을 성족리 주민들이 흩어진 자재를 보관해 오다 지난해 군에 건의하면서 복원작업이 시작됐다.

이에 따라 군은 군비 3억 7000만원을 투입해 보은읍 성족리 동학공원 인근에 석천암 복원을 위한 착공식을 가진데 이어 1년여 만인 이날 준공식을 갖게 됐다.

보은읍 성족리에 세워진 석천암은 보은출신인 충암 김정이 학문을 배웠던 곳으로 한말 개화기에는 사립 광명학교로 운영되다 광복 후에는 종곡초등학교 임시교사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암 김정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로 자는 원충 호는 충암,고봉이다.

또 조선중기 여러 가지 개혁정치를 시도한 대표적인 유학자로 18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21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했다. 이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헌과 형조판서를 지냈다.

보은군 문화관광과 홍영의 문화재팀장은 "자칫 사라질뻔한 소중한 문화유산이 주민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복원돼 문화재팀장으로서 뿌듯하다"며 "이러한 시설이 우리 후손들에게 오래도록 온전하게 전승될 수 있도록 유지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 충암 김 정(1486~1521)-------------------

자는 원충, 호는 충암, 본관은 경주, 정랑 효정의 아들이며 판도판서 장유의 후손이다.

1504년 사마시에 합격 1507년(중종2년) 증광문과에 장원 정언등을 거쳐 순창군수 때 폐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하였다가 보은 함림역에 유배되었다.

1516년(중종 11)에 풀려나와 응교 전한에 임명됐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뒤에 부제학 동부승지 도승지를 거쳐 이조참판 겸 홍문과 제학 대사헌을 지내고 뒤애 형조판서로서 예문관 제학을 겸임했다.

조광조와 더불어 지치주의의 실현을 위해 미신의 타파 향촌의 상호부조를 위한 행약의 전국적 시행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때 조광조등과 함께 투옥되었다가 금산에 장배, 다시 제주에 안치 뒤에 사사되었다. 시문은 물론 그림에도 능하여 새.짐승등을 잘 그렸다.

보은의 상현서원, 청주의 신항서원, 제주의 귤림서원, 순창의 화산서원, 제주의 귤림서원 등에 제향되고 있다. 연의정 추증, 시호는 문간 저서로는 충암집, 제주풍토기가 있다.

지금도 성족리 179번지에는 충암 선생이 출생하여 성장한 곳을 기념하기 위해 1817년(순조 17) 건립된 충암 김정선생 유허비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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