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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아니면 안 되는 도시"…보은 잠식한 '퇴직 공직자 공화국'
2026. 05.28(목) 07:44

보은군의 현실은 처참하다.

1970년대 13만명에 육박하던 인구는 2026년 4월 말 기준 3만705명에 불과하다.

4개월 동안 출생아는 26명에 그쳤고, 사망자는 169명에 달했다. 자연감소만 143명이다.

유입 인구가 유출보다 더 많아 감소인구는 상쇄되고 있으나 고령화율은 점점 가속되고 있다. 전체 인구의 44.14%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지역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고, 청년은 떠나며, 산업은 움츠러들고 있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더이상 과장이 아닌 단계에 들어섰다.

그런데도 보은군 사회의 중심에는 늘 비슷한 얼굴들이 자리한다. 퇴직 공직자들이다.

보은군 사업 수행단, 각종 협회와 주민조직, 위원회, 자문기구를 들여다보면 사무국장도, 실무 책임자도, 위원도 공직자 출신이 많다.

퇴직 후에도 또 다른 공공영역으로 이동해 영향력을 이어간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제2의 행정 권력'처럼 기능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것이 이제 단순한 경험 활용 차원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보은의 공공영역은 점점 "공무원 출신끼리 순환하는 폐쇄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물론 행정 경험은 중요하다. 작은 농촌지역일수록 행정 절차를 이해하는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보은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균형을 잃었다.

지역 공공 일자리와 의사결정 구조가 특정 경력집단 중심으로 고착되면서 새로운 인재가 진입할 공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퇴직 공직자 상당수는 이미 안정적인 연금을 받고 있다.

월 300만 원 안팎의 연금에 위탁기관 급여와 각종 수당까지 더해 월 500만 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연간 6천만 원 수준이다.

이 돈이 보은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군민들이 더 잘 안다.

벼농사 수만 평을 지어야 얻을 수 있는 돈이다. 과수원 수천 평을 돌보며 냉해와 병충해, 폭염을 견뎌야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수입이다.

농민들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 허리를 굽히는데, 일부 위탁기관과 단체 사무실에서는 냉방이 돌아가는 공간에서 행정 문서를 다루며 더 많은 보수를 받는다.

이 지점에서 군민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다. 노동의 가치보다 "누구였느냐"가 더 중요한 사회가 되어간다는 절망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회의 독점이다.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어 지역을 떠난다. 대학을 졸업해도, 지역에서 활동해도, 공공영역에 진입할 통로는 좁다.

반면 좋은 자리들은 결국 익숙한 이름들로 채워진다. "결국 또 그 사람들"이라는 말이 지역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이유다.

위원회 구조도 다르지 않다. 보은군 실과사업소가 운영하는 위원회는 2025년 6월30일 기준 117개나 되는데 특정 인물들이 중복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인맥과 행정 경험이 반복적으로 재활용되는 구조에 가깝다. 보은군 각종 위원회 실비변상 조례에 따라 7만원 회의 수당은 덤처럼 따라온다.

문제의 본질은 돈 몇 만 원이 아니다. 의사결정 구조 자체가 폐쇄적으로 굳어진다는 데 있다.

늘 같은 사람들이 심의하고, 자문하고, 평가하고, 추천한다. 새로운 시각은 들어올 틈이 없다.

결국 행정과 지역사회는 서로를 견제하기보다 서로를 보호하는 관계로 변질된다. 작은 농촌일수록 더 경계해야 할 '보이지 않는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이다.

지방선거철 풍경은 이 구조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후보자 캠프 곳곳에 퇴직 공직자들이 포진한다. 행정 경험과 조직 이해도, 인맥을 무기로 정치권과 결합하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다시 각종 위원회와 단체, 사업 현장으로 흩어진다. 행정과 정치, 공공사업이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다.

그 결과 보은은 점점 "공무원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도시"처럼 변해간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신호다. 지역이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사람이 등장해야 한다.

청년 창업가도, 문화기획자도, 사회복지 전문가도, 민간 활동가도 성장해야 한다. 실패할 기회도 주어져야 하고, 공공 경험을 쌓을 통로도 열려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공공영역이 퇴직 공직자 중심으로 순환하면 지역의 미래세대는 애초에 출발선조차 밟지 못한다.

젊은 세대가 떠나는 이유는 단지 돈 때문만이 아니다. "이 지역에서는 결국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체념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지역사회 전체가 이 구조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공무원 출신이 일을 잘하지" 이 말은 어느새 보은 사회의 상식처럼 굳어졌다.

폐쇄적 안정은 결국 지역을 늙게 만든다.

다양성이 사라진 공동체는 활력을 잃고, 활력을 잃은 지역은 결국 소멸로 향한다.

해법은 퇴직 공직자를 배제하는 데 있지 않다. 독점을 끝내는 데 있다.

청년과 여성, 민간 전문가들이 공공영역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

위원회 공개모집 확대, 중복 참여 제한, 공공사업 인력 공개채용 강화, 지역 인재 육성 프로그램 같은 최소한의 장치라도 필요하다.

지금 보은에 부족한 것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키우고 순환 시키는 공정한 구조다.

보은은 새로운 사람을 키우는 도시인가. 아니면, 이미 힘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리를 돌려 쓰는 도시인가. 이 질문 앞에서 지역사회는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보은사람들‧보은신문‧보은이뉴스‧K-LifeTV 공동보도>

보은e뉴스 admin@boeun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