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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역언론 육성과 개혁 사이
2022. 04.19(화) 08:59

허생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완 장군이 허생을 찾아 나라를 구할 묘안을 청했다. 허생이 제시한 황당한 계책에 이완은 매번 어렵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완이 다시 찾아오자 허생은 끝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이 우화는 어떤 고질적인 문제의 개혁을 시도할 때마다 부딪치는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지역신문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수십년 간 똑같은 논의만 되풀이되었고, 이 중 어느 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지역신문발전법은 아마 건국 이래 처음 시도된 해결책일 것이다.

이 법은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큰 틀 안에서 지역언론의 활성화를 표방했다. 종합적인 평가지표에 따라 선정된 신문에 재정 지원을 해 ‘건전한’ 언론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이 제도의 골격이다. 이는 지역신문의 개혁과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지만, 아무래도 육성 쪽에 무게를 더 두는 것 같다.

비유하자면, 지역신문은 화초, 잡초, 독초가 뒤섞여 있는 꽃밭과 같다. 귀한 화초를 잘 키우려면 거름을 줘도 되고, 잡초나 독초를 솎아내는 방법도 있다. 지금의 제도는 고된 풀뽑기보다는 쉬운 비료주기를 택했다.

물론 이 선택은 매우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른바 사이비 언론사를 일망타진할 묘안도 딱히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해당 신문사나 지역사회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득은 없고 인기도 없는 일에 정치인이나 관료가 발 벗고 나설 리도 만무하니 모두 만족하는 묘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반발도 줄이고 특혜 논란도 피하려다 보니 비료 역시 듬뿍 줄 수는 없다. 이래서 이 제도는 큰 효과도 보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기 십상인 운명을 안고 있었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개혁은 추진하기에 매우 힘이 든다. 이해관계가 얽힌 실타래같고, 추진 주체인 정치인이나 관련 인사들도 여기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래서 현실적 여건을 하나씩 고려하다 보면 개혁의 큰 방향은 흐트러지고 효과 역시 지지부진해진다. 이완 장군의 고민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완이 기대하듯이 개혁에서 모든 당사자가 만족하는 묘책은 없다. 개혁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정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갖가지 문제점은 부차적인 것이다. 추진 과정이 복잡하고 험난할수록 우리는 허생의 조언을 따라야 한다. 바로 지엽적인 실행상의 난점보다는 큰 그림, 즉 우리가 제대로 방향을 잡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지역신문 개혁과 육성을 주장하는 지식인이나 시민단체 역시 발상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지역이 죽어 가는데 이는 모두 비대해진 수도권 탓이니 지역을 육성해야 한다, 지역이 살려면 지역언론이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자인 지역언론을 도와주어야 한다. 흔히 이런 식의 논리가 이어진다. 이처럼 일종의 순환논리에만 갇혀 다른 길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언론 육성이란 고상한 명분만 고집하는 동안 그나마 싹트고 있던 건전한 언론사마저 죽어가고 있다. 벌떼처럼 달려들지도 모르는 온갖 지역 언론사들이 무서워 지역엔 아예 광고를 안 준다는 광고주의 말이 나에겐 거창한 구호보다 더 현실감 있게 들린다.

‘지역언론, 어떻게 살릴 것인가’ 하는 상식적 질문에 대한 상투적인 해답의 폐쇄회로에서 한번 벗어나보자. 정말 지역언론이 살려면 한번은 죽어야 한다.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보은e뉴스 admin@boeun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