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손님,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향 보은군 산외면 방문
| ||||
|
국내 최고의 대북전문가이며 탈북자 출신의 첫 국회의원으로 잘 알려진 새누리당 비례대표 조명철 의원이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인 보은군 산외면을 찾은 것이다.
조의원은 이날 개최된 ‘제17회 산외면 민속한마당축제’에 참석하여 지역주민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사 진행자의 소개로 단상 위에 오른 그는 마이크 앞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조 의원은 난생 처음 아버지, 할아버지의 고향이었던 보은을 찾은 소감을 전하며 감격스러워했다.
자그마치 54년 만에 밟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그는 지금껏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대신해 고향땅을 지켜준 어른들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큰 절을 올렸다.
|
조 의원은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으면서도 끝내 다시 고향 땅을 찾지 못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 그는 북한 땅에 살면서도 이남이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향을 숨겨야만 했던 어려운 시절을 상기했다.
그러면서 지역주민들을 향해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향인 보은을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한 뒤, “이제부터 보은군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누구나 찾아오고 싶고 찾아오면 떠나지 않는 고향으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조 의원은 “이제부터 보은을 더 발전시키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라면서 “보은발전을 위해 적극 협조할 것”임을 다짐하기도 했다.
조 의원은 또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시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취약계층, 취약사회가 웃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가 바로 국민 행복시대"라고 전하며 "지역구 국회의원인 박덕흠 의원과 함께 보은을 다시 부흥시킬 것"임을 약속했다.
한편, 이날 조명철 의원은 고향이 산외면인 할아버지의 성함은 조덕용씨이고 부친은 조철균(1929생)씨로 소개했다.
또한 조 의원은 고등학교 때 비로소 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진짜 고향이 북한 땅이 아닌 이남 땅임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994년 서울 땅을 밟게 된 직후 관계당국을 통해 고향과 가족. 친지 등을 찾았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지난 4.11총선에서 새 누리당 비례대표로 당당히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에는 직접 보은군을 방문해 정상혁 군수에게 가까운 혈육과 친척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정 군수는 조의원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해 듣고 적극적으로 나서 조 의원을 도왔으나 아직까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 연설 도중 함께 동분서주해주었던 정 군수를 향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동시에 산외면 주민들에게 자신의 혈육과 친지들을 찾아줄 것을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 국회의원 조명철은 누구인가?
|
1959년생인 조명철의원은 북한 정무원 건설부장(건교부 장관에 해당)이던 아버지와 러시아어 번역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간부 자제만 다닐 수 있는 평양 남산고등중학교를 거쳐 김일성종합대를 다닌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교 및 대학 후배’이기도 하다.
북한 최고 명문인 김일성종합대학교 자동조종학과를 졸업하고 석·박사 과정을 밟은 조 의원은 김일성종합대에서 경제학부 교수를 지내다 곧바로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인생에 있어 최고의 모험을 결심하게 된 것은 유학 때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남개대학 교환교수로 일하던 시절 같은 공산주의 국가지만 좀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되는 것을 느끼고 난 다음부터 자유가 없는 북한사회와 김정일 정권의 회의를 느낀 나머지 1994년 7월 월남하게 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35세였다.
조명철 의원은 이후 남한으로 건너온 뒤 대외경제정책 연구원에서 북한경제문제 연구위원과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 등을 맡아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전망을 내놓으며 지금까지 국내 최고의 북한전문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4.11총선에서는 ‘탈북자 신드롬’을 일으키며 새누리당 비례대표 4번으로 ‘탈북자 출신 1호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그는 한국 사회에서 느낀 ‘탈북자’라는 지울 수 없는 이름과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북한 당국의 신변위협 등으로 보이지 않는 눈물도 많이 흘렸다.
보은e뉴스 admin@boeun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