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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역사를 알면 보은의 정체성이 보인다"

황인학 박사, 역사 아카데미서 보은의 역사적 가치 재조명
2026. 08.31(월) 15:07

보은의 역사를 지나간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보은의 오늘을 이해하고 미래의 방향을 찾는 자산으로 바라보자는 뜻 깊은 강연이 열렸다.

보은문화원(원장 정경재)이 마련한 "내고장 역사 아카데미'가 30일 오전, 보은문화원 시청각실에서 열린 가운데 이날 특강에는 보은학연구소 자문위원인 황인학 박사(재경보은군민회장)가 초대됐다.

황 박사는 먼저 '보은의 역사적 정체성'을 주제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와 동학농민운동,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주요 흐름 속에서 보은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되짚으며 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이어 황 박사는 "역사는 과거의 사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보은의 역사를 개별적인 사건이나 인물 중심으로 바라보기보다, 그 속에서 보은만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은의 역사적 정체성을 △민족 통일에 기여한 고장 △민족의식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고장 △호국충절과 호국불교의 고장 △사회개혁과 근대화에 앞장선 고장 등 네 가지로 정리하고 각각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풀어냈다.

이번 강연에서 황 박사가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민족 통일의 길을 연 고장'이라는 정체성이다.

황 박사는 삼국시대 보은이 소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영남과 중부지역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보은과 주변 지역에서는 신라와 백제가 오랜 기간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벌였고, 그 중심에 삼년산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 삼년산성은 단순한 산성이 아니라 신라가 서쪽으로 세력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군사 거점 역할을 했으며, 이후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은과 인근 지역의 정치·군사적 움직임이 왕건의 후삼국 통일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를 관통해 보은이 지녔던 지리적·군사적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통일의 역사에 이어 황 박사가 두 번째로 주목한 것은 '민족의식과 민주주의의 고장'이라는 정체성이다.

그 출발점으로는 황 박사는 속리산 복천암에서 오랫동안 수행했던 신미대사와 훈민정음의 관계를 들었다.

황 박사는 신미대사가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학계의 견해를 소개하며, 한글 창제 이후 불경의 한글 번역과 보급 과정에서 불교계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당시 한문을 알지 못했던 일반 백성들에게 새 문자가 생활 속 문자로 자리 잡는 과정이 중요했다며, 불경의 한글 번역과 보급이라는 측면에서 신미대사와 불교계의 역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와 함께 황 박사는 이러한 민족의식의 흐름을 조선 후기 보은에서 크게 일어났던 동학운동으로 이어갔다.

보은 장안 일대는 전국 각지의 동학교도들이 모여들었던 보은집회가 열린 곳으로, 황 박사는 이 집회를 단순히 수많은 교도가 모인 대규모 행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후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사적 출발점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보은집회에서 표출된 동학의 정신이 동학농민운동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비폭력 민족운동과 3·1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또 김구를 비롯해 동학과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이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광복 이후 정부 수립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들어 "보은에서 시작된 동학의 역사 역시 보다 긴 흐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 번째로 제시한 정체성은 '호국충절과 호국불교의 고장'이다.

황 박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중봉 조헌이 보은현감을 지냈고 이후에도 보은과 깊은 인연을 이어갔다는 점을 소개하면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을 던진 여러 인물 속에서 보은이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은 출신으로 알려진 벽암대사의 행적을 소개하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한 승군 활동과 남한산성 축성 등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불교계가 맡았던 역할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은의 호국정신이 특정 인물이나 하나의 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의병과 승병을 비롯한 여러 인물의 활동과 속리산·법주사라는 공간을 통해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지역의 중요한 정체성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황 박사는 '사회개혁과 근대화에 앞장선 고장'이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충암 김정 선생을 들었다.

황 박사는 충암 김정이 조광조 등과 함께 조선 중종때 개혁정치에 참여해 토지와 신분 문제 등 당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려 했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곡 성운, 어윤중 등 보은에 정착하거나 보은과 인연을 맺었던 개혁적 사림과 인물들의 활동을 소개하며, 보은을 '개혁 사림의 본향'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황인학 박사는 "보은은 결코 평범한 농촌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정신과 저력을 품은 고장"이라며 "삼년산성, 복천암, 장안 동학도소 터, 고봉정 등 소중한 역사 유적을 체계적으로 엮어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관광 자산으로 가꾸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강연에는 중봉 조헌 선생의 14세손인 조윤호 부산대 교수와 충암 김정 선생의 후손들이 직접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조 교수는 "선조의 숨결이 가장 깊게 배어 있는 보은에서 역사적 의미를 함께 나눌 수 있어 뜻깊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최재형 군수와 이경노 군의회 의장, 정경재 보은문화원장을 비롯해 지역 주민과 재경보은군민회 회원 등이 다수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강연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평소 익숙하게 알고 있던 삼년산성과 속리산·법주사, 동학, 중봉 조헌과 충암 김정 등의 역사 속에 이처럼 깊은 의미와 가치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며, 보은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은e뉴스 admin@boeunenews.com